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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빠지지 않는 것 하나가 머리를 잘 감지 않는다는 걸 텐데요.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떡 지고 까치둥지 머리를 한 중국인들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실제 중국인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 머리를 감지만 몇 주 동안 감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중국 샴푸회사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중국인의 1/5이 머리를 감지 않거나 또는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데요.

 

중국에서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가면 '이발하실래요, 머리 감으실래요?'라고 물어봅니다. 손님의 다수가 이발이 아니라 시터 우 즉, 머리 감는 서비스를 받으러 오기 때문인데요. 머리 감는 게 일상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이발하는 것처럼 가끔 하는 행위인 것이죠. 이쯤 되면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 정부가 머리 감기 캠페인을 벌인 것도 이해가 갑니다.

 

왜 중국인들은 머리를 잘 감지 않을까요? 위생관념이 없어서 일까요? 물 사정이 안 좋아서 일까요? 딱히 정답이 이거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환경과 문화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중국의 환경이 머리감기를 쉽지 않게 합니다. 중국을 경험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은 어딜 가도 인산인햅니다. 대도시 역, 쇼핑센터, 출퇴근 시간 모두 그야말로 인파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데요. 이런 때 거리에 나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떠밀려 다니기 일쑤지요. 명절과 같은 때 버스나 열차를 타면 좁은 칸에 서있는 사람, 의자 밑에 누워있는 사람까지 정말 사람이 겹겹이 쌓이는데요. 이 정도 환경이면 머리를 감고 외모에 신경을 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 많은 안면도 없는 사람들을 신경 쓸 생각도 들지 않고 누굴 봐줄 기분도 들지 않지요. 떡진 머리도 상관없고 더우면 그냥 웃옷을 훌러덩 벗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중국의 기후도 문제입니다. 중국의 대부분 지역은 황사와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운데요. 이런 환경에서 샴푸하고 젤을 발라봐야 먼지만 더 달라붙습니다. 연한 색의 멋진 트렌치코트 깃은 금방 새까맣게 변해버리죠. 머리 감고 단장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인데요. 거기다가 중국인들은 원래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타인의 시선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실용을 제일 중시하는 중국인들에게 머리 감기와 꾸미기는 할 이유가 없는 행위인 것이죠.

 

물론 중국인들이 원래 외모를 가꾸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 가장 번창했던 당나라 때의 의복과 차림새를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중국인이 외모를 가꾸지 않게 된 시기는 사회주의 중국 때부턴 데요. 나라살림은 어렵고 계급투쟁 바람이 불면서 외모를 가꾸고 멋을 부리는 자체가 반동으로 비난받았습니다. 남녀노소 모두 검은색 계통의 인민복을 입었고 헤어스타일은 짧은 머리 일색이었죠.

 

개혁개방 이후 경제가 크게 성장했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일부 젊은 층이나 상류층을 제외하면 농촌사람은 물론 도시민들도 꾸미는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직도 한여름 저녁이면 잠옷 차림이나 웃옷을 벗고 시내를 활보하지요. 베이징올림픽 때나 상하이 엑스포 때 정부에서 외국인 보기에 민망하다며 웃옷을 벗는 것과 잠옷 차림으로 공원에 다니는 것을 금지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것은 웃지 못할 일화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 급속도로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의 얘기는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에서도 외모는 예외입니다. 중국인들은 돈이 없거나 친구가 없으면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여기지만 외모를 꾸미지 않았다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좀 많이 다르죠.

 

우리는 중국인들을 대할 때 종종 그들의 지저분한 머리와 초라한 복장을 보고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곤 합니다. 한국에 방문한 중국의 고위급 인사가 까치집 머리 때문에 조롱당한 얘기나, 중국 여성 갑부 순위 10위권에 랭크된 여성 경영자가 한국에서 명품 매장에 갔다가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입장을 거부당한 얘기는 중국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잘 나타내는데요. 사람을 외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듯, 중국인에 대한 이런 편견은 크나큰 오산이고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보기에는 그저 씻기도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로 여겨지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나면 중국인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리 낡고 오래된 물건이라도 쉽게 버리지 않고,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이유로 거실에 등을 달지 않는 집도 많습니다. 만성적 물 부족에 시달리는 탓에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물 절약 습관이 몸에 배어 있죠. 한국인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에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우리만의 잣대로 중국인들을 판단하는 건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