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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벚꽃 명소

지식뉴스 2021. 10. 4. 02:47

일본말에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꽃 중에는 벚꽃이 으뜸이요, 사람은 무사가 제일이란 뜻이죠. 이처럼 벚꽃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정말 각별합니다. 봄만 되면 일본인의 90%가 하나미(花見), 즉 벚꽃놀이를 즐깁니다. 신문방송에서는 각 지역에 언제 벚꽃이 필 지에 대한 개화 예상도, 즉 ‘벚꽃 전선’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 음악과 미술, 영화와 드라마 등 모든 예술 장르에서도 벚꽃은 단골 소재입니다. 해마다 봄에는 새로운 벚꽃 노래가 나오는데, 벚꽃을 테마로 한 ‘벚꽃 노래 랭킹’이 따로 발표될 정도죠. 일본인은 왜 이렇게 벚꽃을 좋아할까요?

 

일본의 벚꽃놀이 역사는 깁니다. 9세기 초부터 궁에 벚나무를 심고 봄마다 벚꽃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후 18세기 들어 에도 막부가 이를 서민정책으로 장려해 도쿄 곳곳에 벚나무를 심으라고 하면서 벚꽃놀이 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됐죠. 또 근대화 추진 과정에서 학교와 도로 신설 같은 토목공사를 할 때마다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습니다. 특히 일본 군부는 문화적 내셔널리즘의 상징 코드로 벚꽃을 이용했습니다. 모자와 계급장에도 벚꽃 표식을 썼고, 그 관행은 지금의 자위대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벚꽃을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과 연관시키는데요. 화려하게 확 피었다 확 지는 벚꽃의 모습이 삶의 비장함과 무상함을 강조하는 일본 전통의 미의식 또는 일본의 무사정신과 잘 어울린다고 미화합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반대로 이런 벚꽃의 특징을 일본인의 이중성이나 집단주의와 엮어 비꼬기도 합니다.

 

마케팅 학자들은 일본인이 벚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벚꽃의 희소성과 친숙함에서 찾습니다. 일본 벚나무의 주품종인 ‘소메이 요시노’는 5일에서 10일 사이에 꽃이 피었다 집니다. 꽃이 피는 기간이 너무 짧아, 희소성이 있어서 다른 꽃보다 더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정 세일’ 상품에 손님이 몰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문학과 영화 전공의 이마이즈미 요코 교수는 이런 일본인의 모습을 “5일간의 탐닉, 360일간의 무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면 일본 전역에 벚꽃이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친숙하다는 점도 각별한 애정의 이유로 꼽습니다. 일본 어디를 가도 학교와 길,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봄마다 볼 수 있는 꽃이다 보니, “우리 꽃”이라는 친밀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로 “일본에서는 벚꽃 피는 때가 헤어짐과 만남의 시기와 절묘하게 겹쳐서 일본인에게는 벚꽃의 의미가 단순한 꽃 이상”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저도 이 설명에 가장 공감하는데요, 우리와의 정서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에서 벚꽃이 피는 시기는 우리보다 조금 빠른 3월 말 4월 초입니다. 이때 일본 학교의 졸업식과 입학식, 회사의 입사식이 집중됩니다. 일본은 4월에 새 학기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벚꽃이 피고 흩날릴 때, 일본인은 정들었던 이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이들을 만납니다. 헤어짐은 이별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고, 만남은 새로운 시작의 두근거리는 설렘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평생 가는 강렬한 기억들이죠. 그 기억의 배경엔 어김없이 벚꽃이 흩날립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벚꽃을 보면, 그때의 복합적인 감정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벚꽃 너머 그때 그 아련했던 추억을 보는 겁니다.

 

많은 일본인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 벚나무 아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추억으로 간직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사진 속 할아버지는 벚꽃과 함께 추억으로 남겠죠. 해마다 벚꽃 노래가 히트 치는 이유도 그 노래가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추억을 건드려서입니다. ‘벚꽃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학업과 취직 때문에 고향을 떠날 때가 생각났다” “학생 때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내 아이의 졸업식 때 불렀다” 등 대부분 추억이 연상되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벚꽃은 추억을 자극하는 매개체인 셈이죠.

 

도쿄의 벚꽃 명소 세 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도쿄 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지도리가 후치’라는 곳입니다. 황궁 성벽 해자를 따라서 약 7백 m의 산책길에 조성됐는데요, 물가에 드리운 화려한 벚꽃 아래 가족끼리, 연인끼리 배를 타며 유유자적할 수 있지요. 야간 개장도 하니까, 까만 밤에 떠 있는 흰 벚꽃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두 번째 추천 명소는 도쿄의 신주쿠 역에서 가까운 신주쿠 교엔입니다. 과거 황실 정원이었던 이곳엔 1300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도심 속 벚꽃놀이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명소는 우에노역 바로 옆의 우에노 공원입니다. 도쿄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소로 여의도 벚꽃놀이 축제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벚꽃 명당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서 이렇게 돗자리를 가지고 새벽같이 나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봄에 일본인과 비즈니스를 할 때 벚꽃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