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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상업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어디일까요? 이 지역 기차역에 가면 ‘상도 온주(商都溫州)’라는 네 글자가 붙어있는데요. 바로 중국 상업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 원저우입니다. 원상(溫商)이라고 불리는 원저우 상인들은 중국의 유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산시성(山西省) 상인을 의미하는 진상(晉商), 안후이성 상인을 의미하는 후 이상(徽商)과 함께 중국의 3대 상인 중 하납니다. 진상과 후 이상이 주로 권력과 유착해 부를 축적한 반면, 원저우 상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축적해온 것으로 유명한데요. 원저우 상인이 중국 대표 상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전략은 무엇일까요?

 

원저우는 중국 동남부 저장성(浙江省)의 남쪽에 위치한 인구 800만 명의 항구 도십니다. 항구 도시니까 개혁개방정책의 혜택으로 성장했겠구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원저우는 삼면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나마 뚫려있는 동쪽은 바다라 지리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데요. 그나마도 동쪽 바다 저편에 대만이 있어 대외개방도 어려웠죠. 원저우에 내륙과의 철도가 개통된 게 1998년이니 그 고립의 역사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저우는 대부분이 산이라 농사지을 땅도 별로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장사밖에 없었습니다. 너도나도 장사를 시작했고, 자연히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죠.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굶어 죽기 십상이다 보니 원저우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부지런한데요. ‘돈을 얼마나 벌지는 손과 발이 안다’는 원저우 격언이 있을 정도죠.

 

원저우 사람들의 상인 본능은 1960-70년대 살벌한 마오쩌둥 시기에도 계속됐습니다. 몰래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 던 그들은 1978년 중국에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그야말로 훨훨 날게 됐는데요. 중국의 다른 지역들이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를 놓고 하느니 마느니 머뭇거리고 있을 때 원저우 상인들은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최초의 민영기업도 원저우에서 나왔고요. 이윤 연동제, 생산 청부제, 출자금에 따른 이익 배분 등도 모두 원저우에서 최초로 시도됐죠. 이들은 앞 다퉈 창업을 하고 경쟁을 피하기 위해남들이 잘 안 하는 품목을 열심히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품목이 단추, 안경테, 피혁, 양말, 빨대, 라이터, 열쇠 등인데요. 싼값에 부지런히 만들고 그걸 들고 중국 전역으로, 그리고 세계로 나갔죠. 원저우는 전 세계 안경테 시장의 70%, 금속라이터의 80%, 면도기의 60%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원저우 상인들의 활약에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정부의 도움 없이 모두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민간의 조그만 기업들이 잡다한 소상품으로 거대시장을 만들어낸 것인데요. 중국 개혁개방 성공의 일등공신 중 하나로 불리는 이 사업방식을 ‘원저우 모델’이라고 합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우리는 원저우의 모험가에게 감사해야 하고, 원저우를 배워야 한다 ‘고 했고요. 보수파였던 리셴녠(李先念) 국가주석조차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원저우로 가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죠.

 

그럼 원저우 모델이란 어떤 사업방식일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원저우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전 세계를 무대로 돈을 버는 겁니다. 원저우 사람들은 젊을 때부터 좁디좁은 원저우를 떠나 중국의 다른 지역은 물론 멀리 유럽,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는데요. 그 수가 350만 명에 이릅니다. 프랑스 파리에만 무려 20만 명의 원저우상인들이 있죠.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의 패션도시 프라토에는 중국인 4만여 명이 사는데요. 이들은 1970년대 말 이후 밀항선을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원저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탈리아인 공장에서 막노동자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돈을 모아 창업을 했는데요. 프라토에만 원저우 사람의 기업이 2,000여 개가 있습니다. 이들은 본사와 디자인센터만 이탈리아에 둘뿐 모든 제조 공정은 원저우의 친지에게 맡겨 디자인과 품질은 최고급이면서도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고 있죠.

 

이뿐이 아닙니다. 원저우 사람들의 상인 기질은 가히 천부적이라고 할 정도로 언제 어떤 환경에서도 빛을 발하는데요. 단추, 안경테, 라이터 같이 남들이 잘 하지 않고 큰돈이 되지도 않는 작은 아이템들로 세계시장을 제패한 것도 이들의 지극히 실용적인 태도와 장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원저우 상인들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사방팔방 떠돌아다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업종을 해서 소리 소문 없이 큰 부자가 되는데요. 특히 돈을 벌 수 있는 건수를 캐치해내는 능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일례로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대학입시가 부활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원저우 상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각 대학이 신입생을 다시 모집할 것이란 점을 미리 알아챈 그들은 학교를 찾아가 교표를 베껴 배지를 만들고, 각 학교에 팔아 큰돈을 벌었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인의 애국심이 고조될 것이라고 판단한 원저우 상인들은 성조기를 대량 제작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원저우 상인들은 2000년대 들어서는 대규모 투자그룹을 만들어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 부동산을 매집하여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등장합니다. 일부에서 원저우가 투기꾼들의 본거지로 전락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원저우 상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들은 그냥 돈 되는 일을 할 뿐인 것이죠.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중국 사업에 있어서도 암묵적인 사업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는 것을 종종 보는데요. 예컨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시장에서도 비주력 업종은 하지 않는다거나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중국에서 폼 나는 사업만 해서는 절대 큰돈을 벌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법을 위반하는 것만 아니면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합니다. 그런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고 그런 기업이 존경받습니다. 원저우 상인들처럼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