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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일, 한국과 중국 간의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가 서울에서 열렸는데요. 막판 분전으로 중국 축구가 이전보다는 성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여지없이 한국에 패하고 말았죠. 사실 경기 전부터 한국이 중국에 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성인대표팀 경기에서 한국이 중국과 30번 붙어서 진건 딱 한 번뿐이니까요. 특히 월드컵, 아시안컵, 올림픽 등 주요 대회에서는 단 한 번도 한국이 중국에 진적이 없습니다. 중국이 축구에서 이렇게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요?
물론 중국 축구가 한국에만 약한 건 아닙니다. 13억 인구 대국에 미국과 올림픽 1위를 다투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축구에서만큼은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인데요. 일단 FIFA 랭킹만 해도 늘 100위권 언저리고요. 월드컵 본선에는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으로 자동 출전했던 2002년 월드컵 때 딱 한번 진출했죠. 올림픽이나 아시안컵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중국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패배는 2013년 6월 15일 태국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이 꼽히는데요. 아시아에서도 별 볼일 없는 태국에게 그것도 홈그라운드에서 1대 5로 참패한 것이죠. 언론에서 ‘6·15 참사’라고 부른 이 날, 축구광 시진핑 주석은 그야말로 발끈했습니다. “경기 결과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라”는 시진핑의 지시가 떨어지자 중국축구협회는 감독을 즉시 해임하고 참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해야 했죠. 그리고 중국 체육총국은 2050년까지 중국 축구를 세계 일류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소위 축구 굴기 계획을 발표하게 됩니다.
중국이 축구에서만큼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 혹시 축구에 대한 지원이나 인기가 부족해서일까요?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중국 프로 1부 리그인 슈퍼리그에는 연간 1,000억 원 이상 쓰는 팀이 7-8개나 되고요. 슈퍼리그 16개 팀이 2015년 겨울 이적 시장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무려 3,500억 원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를 들여 제르비뉴, 하미레스 등 유럽 명문구단에서 한창 활약하는 ‘싱싱한’ 선수들을 경쟁적으로 끌어오고 있죠. 투자가 넘치니 자국 리그의 인기도 높아져서 중국 슈퍼리그 평균 관중은 우리나라 K리그의 3배에 해당하는 2만 2천명 수준이고요. 광저우 헝다 같은 인기 구단은 4만 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축구대표팀의 실력만큼은 여전히 캄캄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이유로 한 자녀 세대 선수들의 몸에 밴 개인주의가 팀워크를 중시하는 축구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는데요.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자배구나 여자축구 등 다른 단체 종목에서 중국이 세계를 제패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축구 저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축구협회가 2015년 발표한 중국 내 등록선수 수는 놀랍게도 71만 명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480만 명은 물론, 우리나라의 109만 명보다도 훨씬 적죠. 그 넓은 땅에 왜 이렇게 선수가 없을까요? 먼저, 초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입시전쟁이 벌어지는 중국의 교육시스템 하에서 사회체육으로서의 축구는 별로 인기가 없고요. 세계 축구의 변방에 불과하다 보니 엘리트 종목으로서도 인기가 없습니다. 중국이 세계 최강인 탁구가 등록 선수만 3,000만 명인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그가 단기간에 급팽창하다 보니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축구 변방이었던 중국 리그가 세계 최대 규모가 되자 몇 안 되는 중국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몸값이 급등한 국내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몸을 사리기 시작하는데요. 일부 구단이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에게 '부상당하지 않게 살살 뛰라'는 지시를 내린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 정도죠. 게다가 실력에 비해 몸값이 터무니없이 높은 왜곡된 연봉구조 형성되면서 실력 정체를 부축이고 있는데요. 잠재력 있는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줄어든 반면 중국 리그에는 유럽과 남미에서 거액의 몸값을 받고 이적한 외국인 선수들이 증가했죠. 광저우 헝다 같은 중국 클럽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역시 이적한 외국인 선수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 클럽들이 핵심 포지션을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다 보니 리그가 커질수록 자국 선수들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오히려 줄고 있는 것이죠.
물론 앞으로도 중국 축구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6.15 참사 이후 절대 권력자인 시진핑 주석이 축구를 직접 챙기고 있고요. 2020년까지 축구 등록 선수를 5,000만 명으로 늘리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축구 굴기 계획을 보면 중국 축구의 핵심 문제가 뭔지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축구 저변 확대와 지금과 같은 수퍼리그의 발전이 병행된다면 다소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중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은 올라갈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 축구의 발전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요. 현대 사회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그 나라의 자존심과 국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거대 산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스포츠 산업을 연간 5조 위안, 우리 돈 870조원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중 축구 산업 규모만도 2조 위안이나 됩니다. 한국 축구 선수와 지도자의 중국 진출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이고, 뿐만 아니라 중국 리그와의 교류를 통한 동반 상승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서는 축구를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국 축구시장에 직접 진출할 수도 있고요. 중국 내 열악한 유소년 축구 등에 대해 후원을 한다면 작은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중국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중국 리그와 축구 산업을 일으키려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해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