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1997년 컴퓨터에 패한 뒤, 바둑에서도 언젠가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닥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2016년 알파고의 승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컴퓨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에 따라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기계입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대단한 연산 능력을 과시해도, 인간의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의 경지를 감히 넘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런 믿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인공지능은 작곡을 하고, 시를 쓰고 운전, 투자 결정, 그리고 환자의 진단과 치료까지 수행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인간의 숙련을 대체했듯이,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불안한 얼굴로 서로에게 묻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 과연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위협하는 전문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즈니스맨, '회사원'입니다. 20세기 이래 수많은 대졸자들이 회사원이 됨으로써 일자리를 얻고 더 나아가 기업을 이끄는 고도성장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20세기 후반, 대기업의 시대가 저물면서 그 영향을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회사원들이었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그 결과로 나타난 관리직 포스트의 감소는 '부러진 사다리'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회사원의 평생직장과 경력 성장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인사, 재무, 마케팅 등 주요 경영기능은 물론 경영자와 관리자의 리더 역할 또한 시스템으로 대체되거나 불필요한 군더더기로 사라져 갑니다. 기업의 주역, 회사원은 이렇게 박물관의 유물이 되고 마는 걸까요?
회사원의 일상적인 루틴 업무는 결국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있는 한 회사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는 이제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려면 회사는 다른 회사가 꿈도 꾸지 못할 기상천외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루틴 한 업무와는 정반대 성격의 일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매뉴얼도, 어떠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카피캣 전략도 통용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끌어내야 합니다.
창의성의 아이콘이 된 픽사는 매 작품마다 이전에 거둔 성과를 잊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직원들은 피로와 탈진을 호소했지만, 리더였던 존 라세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멈춘다면, 주변에 널려있는 그렇고 그런 작품들을 재탕할 뿐"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기업은 혁신을 위한 조직입니다. 혁신이 없다면 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정착된 전략을 차질 없이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큰 조직의 구성원과 자기 사업을 하는 안트 러프 러너는 매우 이질적인 유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기존의 회사원 스타일로는 좋은 회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경영학자 게리 해멀은 인재 유형을 '꿀벌과 게릴라'로 나눴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체제 안에서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꿀벌과 거침없이 상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게릴라로 말이죠. 그는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게릴라라고 단언했습니다. 기업이란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추상적 실체일 뿐이며 실제 일하는 것은 오직 기업의 구성원인 회사원입니다. 꿀벌 같은 회사원은 스스로 사라질뿐더러,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마저 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갈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항할 수 있는 전략이 있습니다.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것입니다. 바둑이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바둑판은 한정돼 있고 모든 규칙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둑판의 눈금을 열아홉에서 열여덟 줄로 한 줄만 줄여도 알파고는 처음부터 다시 학습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갑자기 달라진 규칙, 달라진 상황에 마주쳐도 기존의 지혜를 응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지요. 인간은 고정된 게임에서의 승패보다는 기존의 규칙을 파괴하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게임 체인저가 됨으로써 인공지능을 앞질러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것, 거꾸로 보고 뒤집어보는 창의성은 늘 새로운 전략의 핵심이라고 역설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이 가장 취약한, 인간의 비교우위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이제 꿀벌이 아닌 게릴라를 키우고 활용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의 게임을 뒤바꿀 인재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키울 것인가, 지금부터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