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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종영된 지 수년이 되었지만 중국에서의 열풍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4년 말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가 대박을 터뜨린 이유를 두고 ‘별그대’가 우주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중국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니까요. 정식으로 TV 채널을 통해 방영된 것도 아닌 이 드라마가 왜 그토록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초능력을 가진 꽃미남 외계인과 슈퍼스타의 사랑이라는 ‘별그대’의 스토리가 중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도교적 정서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해 보입니다. 400년 전 조선에 온 ‘도민준’은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에 400년간 축적한 엄청난 재력,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얻은 방대한 지식과 연륜을 갖춘 인물입니다. 매의 시력과 늑대의 청력, 순간이동 능력, 누군가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볼 수 있는 초능력도 겸비했지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서사구조와 지구 밖에 살다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은 도교적 색채가 깔린 중국 고전문학의 전형인데요, 중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스토리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민준이 한중 설화나 고전문학 속 신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백발에 긴 수염을 드리운 뚱뚱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20대의 세련되고 훤칠한 꽃미남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설화 속의 인간으로 환생한 외계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갖가지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비해 도민준은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만을 위해 그 엄청난 초능력을 쓴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완벽한 로망이 될 수 있었죠.

 

이렇듯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별에서 온 이방인들을 묘사할 때 인간 세상에 도움을 주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남선녀 또는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내지요. 그런데 서양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어떤가요? 한결같이 흉측한 괴물이거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으로 변신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위협적인 악당으로 묘사되지요.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에일리언 시리즈’, 인간으로 변장한 파충류 외계인들의 지구 침공을 그린 ‘V 시리즈’, 문어같이 생긴 화성인들의 지구 침공을 다룬 ‘우주전쟁’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동양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이지요.

 

동서양이 생각하는 외계인의 외모와 성격이 이처럼 상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차 때문으로 보입니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클러크 혼과 스트로드 벡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요, 첫 번째는 ‘자연 지배’, 두 번째는 ‘자연과의 조화’, 세 번째는 ‘자연에의 순응’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분류에 따르면 미국, 영국, 북유럽 등 서양은 ‘자연 지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는 ‘자연과의 조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미 일부 지역은 ‘자연에의 순응’적인 문화에 해당됩니다.

 

서양인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고,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외계에서 온 존재는 대결을 통해 정복해야 할 대상인만큼 사악하고 흉측한 괴물로 그려지는 것이죠. 반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동양은 대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관찰하고 연구해 인간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만큼 외계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인간을 돕거나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로 보는 것이죠.

 

동양에서 외계인이 주로 절세미인이나 친숙한 노인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시각에서 동서양의 문화를 분석한 또 다른 연구가 있는데요, 폰스 트롬페나르와 찰스 햄든-터너는 인간과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내부 지향(Inner Directed)’과 ‘외부지향(Outer Directed)’문화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미덕의 근원을 사람들 각자의 내부 즉, 자신의 의지와 확신, 신념에서 찾는 ‘내부 지향 문화권’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반면 이 미덕의 근원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외부지향적 문화권 사람들은 외부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인간은 대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대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은 각각 어느 문화권으로 분류될까요? 짐작하시는 대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은 외부지향적 문화권, 자연 지배 성향을 띄는 서양은 내부 지향적 문화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는데요, 이처럼 극명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양쪽 문화권을 모두 만족시키는 비즈니스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소니의 워크맨 개발 스토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사의 아키오 모리타는 1982년 한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않은 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워크맨의 개념을 생각해냈다고 말했습니다. 외부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는 것이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워크맨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북서유럽과 북미시장에서였는데요, 이들처럼 내부 지향적 문화권 사람들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워크맨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참 역설적이지요.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인 ABC가 ‘별그대’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외계인을 대결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미국 시장에서 꽃미남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가 워크맨처럼 대박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