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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9.0을 기록했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십니까. 일본 하면 재난 대국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부 지난 지역에 구호물자가 일 주일 넘게 보급이 되지 않아 이재민들이 곤란을 겪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육로가 파손되면 헬기로 구호물자를 재난 지역에 투하해야 하는데, 재난 관련 공무원들은 재난 대응 매뉴얼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지 못해 일주일을 허비합니다. 결국 사례가 언론에 소개되고 여론에 등이 떠밀려 매뉴얼을 무시한 채로 헬기를 이용해서 구호물자를 재난 지역에 투하합니다.

 

대부분의 기업 혁신활동은 프로세스 즉 업무처리 방식의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보다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내고 그것을 메뉴얼화하고 시스템화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합니다. 물론 효율성을 높이고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업무처리 방식을 매뉴얼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변화가 극심한 환경에서 매뉴얼과 시스템에 집착한 업무처리는 효율성과 함께 생산성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효과성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 년 전, 한국을 방문한 한 미국인이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려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던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미국인은 커피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한 스푼의 우유를 점원에게 요구합니다. 내려먹는 원두 커피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한 스푼의 우유나 크림을 넣어 커피를 부드럽게 만들어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원은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시려면 라떼를 주문하라고 미국인에게 권합니다. 한 스푼의 우유를 넣은 아메리카노와 1/3 에스프레소에 2/3의 뜨거운 거품 우유를 넣은 라떼는 완전히 다른 커피죠. 미국인은 가격이 낮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가격이 높은 라떼를 마시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 까봐 비용을 더 지불하겠다고 하지만 점원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미국인은 라떼를 주문합니다.

 

일본의 재난대응 공무원 그리고 커피전문점의 점원, 그들은 잘못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받은 대로, 숙지한 매뉴얼 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고객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객 만족이라는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지나치게 효율성을 강조하다가 효과성이 떨어진 사례죠. 환경의 변화가 빠를수록 매뉴얼과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노력과 함께, 구성원의 역량을 향상시켜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 함으로써 조직의 의사결정 체제를 유연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매뉴얼은 시장의 다양한 상황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7년, 도요타의 매출은 약 295조 그리고 영업이익은 약 24조였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의 매출은 180조, 영업이익은 4조 남짓.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매출대비 8%, 그리고 아마존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 수준입니다. 분명 도요타는 아마존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기업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다르죠. 지난 해 말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도요타의 3배가 넘습니다. 아마존은 도요타에 비해 덜 효율적인 기업일 수는 있지만 미래의 시장과 고객을 찾아내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더 효과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효율성보다 효과성이 높은 기업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경영방식은 버스 시스템과 같습니다.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을 둔 분석결과를 토대로 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한 통제 속에 계획을 실천하죠. 그에 비해 아마존의 경영방식은 택시 시스템과 같습니다. 택시는 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을 준수하지만 정해진 노선도 정류장도 배차 시간도 없이 운행됩니다. 다만 주어진 도로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적응해 가면서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을 만들어 가죠. 미래의 기업은 주어진 틀 속에서 보다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노력과 동시에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고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플랫폼 접근 방식을 통해서 이전과 비슷한 혹은 이전보다 낮은 비용으로 더 다양한 선택을 원하는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산성을 구성하는 효과성과 효율성은 더 이상 부의 상관관계가 아닌 정의 상관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란 것입니다. 늘 제한된 자원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효과성 향상과 효율성 향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여전히 효과성과 효율성 간의 균형적인 접근을 요구합니다. 최근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등으로 만들어진 원가상승의 압박 속에서 지나치게 효율성을 강조하는 혁신활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