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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국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로 60년, 선거제도도 많은 변동이 있었죠. 독재정권 시절의 부정선거, 돈을 펑펑 써대던 금권선거 이런 것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절차적으로 대한민국은 선진적 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스무 개 나라를 꼽는다면, 들어갈 법도 한 나라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특별히, 2020년 20대 총선에서는 60년 선거역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투표권의 획득. 이건 인류가 저항을 무릅쓰고 도전해왔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노예가 아닌 성인 남성만이 시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여성,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 등은 시민이 되지 못했던 것이죠.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거치며 빈부 격차와 성별에 상관없이 선거권은 확장됩니다. 이 연장선 상에서 대한민국은 제헌의회 선거에서부터 성인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단, 만 20세 이상만 그랬었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이 차별을 받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보통선거권 운동인 투표연령 하향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만 18세가 넘으면 국방, 납세, 근로의 의무가 주어집니다. 공무원시험도 그때부터 응시할 수 있죠. 하지만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OECD 국가 중 만 18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었습니다.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도 보통선거권을 만 18세 이상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3.1 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만 16세였습니다. 4.19 혁명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청소년들이 중요한 데모 세력이 되었습니다. 어리다고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유희 거리로 보지 않습니다. 정치는 '19세 미만 관람불가'일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청년 50여 만 명이 새로운 유권자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투표연령을 낮추는 작업, 쉽진 않았습니다.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판이 바뀔 수 있다는 긍정 심리가 생겨납니다. 18세 유권자 여러분의 진입을 환영합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양대 산맥,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제’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다수제’는 구역별로 1등을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각 구역에서 짱을 보내주면, 국가대표로 삼을게!” 이런 뜻입니다. 주로 민주주의 초창기 국가들이 선택한 방식입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다질 때는 지금처럼 나라 안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았죠. 그래서 구역별 대표자들을 모아 의회를 만들었던 겁니다.
이 제도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정당이 40%의 지지율을 가졌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구역에서 1등만 하면 당선되는데, 모든 선거구에서 40%를 얻으면서 1등을 한다면? 결국 40% 지지율로 모든 의석을 얻는 것입니다. 40%의 지지율로 의회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한 것일까요? 반대로 30%의 지지율을 가진 정당이 있다고 합시다. 이 정당이 각 구역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의석을 얻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당을 지지한 시민들의 표는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이런 것을 죽은 표, ‘사표(死票)’라고 부릅니다.
비례대표제에선 이런 단점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비례대표제는 40%를 얻은 정당은 40%를 가져가고, 30%를 얻은 정당은 30%를 가져갑니다. 일단 민심이 정확하게 의회 구성에 반영됩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좋은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지율이 낮아도 어느 정도가 되면 국회의원을 가집니다. 그렇게 해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에서 경쟁할 수 있는 거지요.
가령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경쟁하며 권력을 주고 받는다면, 유럽에서는 보수적인 기독 민주연합,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에 더해, 급진적인 좌파당이나 중도적인 자유당, 또 다른 차원의 녹색당 등이 다양하게 의회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다수를 이루기 위해 정당끼리 이리저리 손을 잡기도 합니다. 미국은 반대로, 두 당끼리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겨루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당이 너무 넓게 팔을 벌려 다양한 유권자를 끌어안다 보니, 방향을 잡을 때마다 소외감을 느끼는 지지자들이 생깁니다. 양당이 극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국민 여론이 첨예하게 갈릴 만한 문제에서 정작 손을 잡아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한국도 독일보다는 미국에 가까워서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20대 국회에선 정치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하여 제도를 조금 고쳤습니다. 일단 지역구는 1명씩 뽑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47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두고 배분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를 각 당마다 계산한 후,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보다 더 적은 정당에게 우선 의석을 할애하기로 한 것입니다. 세금을 걷어서 복지를 할 때에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부터 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별도의 비례대표 의석을 동원해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를 채워주는 제도를 흔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불렀는데요. 한국의 경우 별도의 비례대표 의석이 300석 중 47석에 불과하고, 또 일단은 47석 중 30석만 지지율만큼의 의석수 대비 지역구 의석수가 부족한 정당에게 보태주기로 했기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준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겠네요.
일각에선 제도가 조금 복잡해졌다고 하는데, 투표하는 사람 입장에선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존과 똑같은 방법입니다. 지역구는 출마한 인물들을 두고 한 명만 고르면 됩니다. 그리고 지지정당을 뽑는 비례대표 정당투표를 따로 합니다. 한 투표용지를 놓고 2개 이상의 후보나 정당에 찍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경험한 선거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투표율이 얼마가 되었건 투표장에 더 많이 가서 표를 던지는 쪽이 승리했다. 그리고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당선된 정치인이 힘이 떨어지고 일을 많이 못했던 것도 아니다. 물론 정치인이 한 일들 중엔 여러분이 싫어하는 일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투표하지 않는 경우 얻는 것은 단 ‘0표’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가 투표할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피 땀 눈물을 흘렸다는 진실,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