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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미국이 왜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자유무역의 기치를 들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본위제를 폐지하게 되면서 각국 경제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을 시행할 수 있게 돼서 경제가 살아났다라는 것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국제무역의 입장에서 본다면 변동환율제도, 다시 말해서 금에 대해서 각국 화폐가 고정돼 있다가 그 고삐가 풀려 버리면서 어떤 방향으로 각국의 통화가 움직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세계 무역에 큰 어려움이 가중됐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1944년 드디어 세계 2차 대전에서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지던 때, 승전국, 연합국에 속한 각국 정부들이 브레턴우즈에 모이게 됩니다. 브레턴우즈에 모인 수많은 각국의 정상들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세계 경제가 정상화될 때 우리 어떻게 해야 하니? 통화정책 어떻게 해야 되니? 또 국제 화폐 시스템은 어떻게 해야 되니? 라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옛날처럼 금의 생산량과 화폐의 공급이 일치되는 완전한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 세계 경제의 슈퍼파워가 된 미국 달러화에 대해서 각국 화폐를 고정시키자라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겁니다. 물론 미국 달러는 금 1온스에 대해서 35달러라는 고정 환율을 도입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에 대해서만 맞추는 형태로 이렇게 어떻게 보면 달러 본위제라는 그런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있었던 금본위제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노력도 있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노력이 바로 뭐냐하면 IMF의 설립이었습니다. IMF는 각국 정부가 일시적인 무역수지 악화 등으로 인해서 금본위제 또는 고정환율제도를 폐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때를 대비해서 긴급하게 구제금융을 해주고 또 각국 경제에 대해서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제로 그림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미국 달러화와 영국 파운드 다시 말해서 파운드 대 달러 환율의 흐름을 살펴보시면 두 번에 걸친 아주 급격한 환율의 조정이 있었음을 금방 발견하실 수가 있습니다. 결국 달러 본위제이고 또 브레턴우즈 체제는 고정환율제도가 이렇게만 외우는데 사실은 저렇게 경제가 급격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는 IMF 등의 협의를 통해서 구제금융도 해주고 또 환율도 일시적으로나마 조정해주는 그런 패턴들을 보여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IMF의 창립과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은 상당히 세계 경제의 안정 그리고 1970년 전까지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이어가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였어요.
그러나 IMF의 창립 그리고 브레턴우즈 협정만으로 모든 것을 자본주의 전후 호황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건 아니죠. 하나가 더 있었어요. 바로 뭐였냐면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가운데 자기 시장을 열어주고 또 못 사는 나라들에게 대규모 원조를 해준 이른바 마셜플랜 정책이 도입된 것입니다. 미국은 전후 세계 경제가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시장경제를 지켜나가는, 또는 자유 진영을 지켜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을 해서 마셜플랜 등의 여러 가지 업무협약 또는 협정 등을 통해 가지고 세계 주요국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풀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시장을 개방하는 그리고 오대양 육대주에 어마어마한 함대, 당장 우리나라만 하면 태평양에 8함대, 7함대 이런 이야기 듣잖아요? 이런 거대한 항공 모함들의 전대들을 보내면서 각국 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해적 집단이라든가, 또는 군사적인 세력들이 무역하고 있는 배들을 약탈하거나 노략질하는 일들을 못 하게 막아내는 이런 일들을 자기가 자처하고 나섰던 겁니다.
자 그러면 미국은 왜 이렇게 솔직히 말해서 돈 안 되는 일을 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큰 자기 시장을 개방하고 서유럽이라든가 동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들에게 대규모 돈을 지원해주는 어떻게 보면 손해나는 일들을 왜 했느냐? 라고 이야기를 하자면 바로 1945년 이후에 벌어졌던 세계 경제의 블록화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동구권 그러니까 동독이라든가 폴란드, 헝가리 등등 동구권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소련의 블록으로 들어가면서 철의 장막 혹은 중국과 죽의 장막들이 (철해지면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는 가운데 이런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 진영을 막아야 된다는 동질감이 생긴 게 가장 컸고, 두 번째는 세계 2차 대전에서 세계 최강의 육상 전력을 자랑하던 히틀러의 독일군을, 물론 소련이 혼자 힘으로 이겨 낸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 처절했던 동부전선에서 스탈린그라드의 대결전이라든가 쿠르크스 등 수많은 세계적인 역사 현장에 남는 전차전을 통해 결국 히틀러의 육군을 분쇄해버린 세계 최강의 육군 전력을 가지고 있는 소련에 대한 공포가 굉장히 컸던 거죠. 다시 말해서 소련과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그 손해나는 짓을 하는 대신에 일본이라든가, 독일 등 세계 2차 대전 때 맞붙어 싸웠지만, 이제는 자신들에게 굴복한 예전의 적들을 육성함으로써 이들이 일차적으로 소련의 확장을 막아내는 그런 방파제 역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이런 생각을 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에 지원했었던 미국의 원조 규모를 살펴보시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이걸 중국이나 또는 소련, 동구권 세력들에 맞서서 서방 세력들, 자유 진영 세력들의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또 그 나라 경제가 육성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런 토양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결국은 공산혁명을 막아내는 길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트루먼이나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했던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는 거고요.
한국이 그동안 우리가 세계적인 경제 기적을 이끈 나라 중의 하나가 한국, 특히 한강의 기적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하면서 와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우리 정부 정말 역대 정부 훌륭해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놓고 본다면 세계적인 블록화 특히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한국이, 대한민국이 가장 중요한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로서 많은 지원을 받고 또 우리나라가 생산한 물건들을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던 것들, 여기에 많은 원조 물론 세계 주요국,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에 왔던 원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대신 대규모 군대가 주둔했던 것, 더 나아가서 자유 진영의 일행으로서 시장을 개방해줬던 것, 이런 것들에 대한 공헌은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후 자본주의 호황, 번영의 시기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