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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었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이세돌을 상대로 4:1의 승리를 거뒀던 알파고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죠. 하지만 그 이후 알파고의 행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세돌 이후 알파고는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일들을 해 왔을까요. 그리고 이런 알파고의 모습이 사회와 문명에 던지는 의미와 질문은 무엇일까요?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바둑에서 AI가 인간 고수를 뛰어넘은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돌은 세계 챔피언이 아니었고 중국의 커제 9단이 세계랭킹 1위였죠. 알파고는 새로운 ‘마스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이세돌과의 대국 1년 후인 2017년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커제 9단에 도전해 3차례에 걸쳐 완파합니다. 커 9단은 이날 대국 중 제한시간 1시간을 남긴 시점에 돌연 자리를 벗어났다가 10여분만에 돌아와 눈가를 닦으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인간 최고 실력자를 완파한 후 알파고는 바둑계에서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대표 데미스 허사비스 등 17명은 2017년 10월 에 ‘인간 지식 없이 바둑 마스터하기’라는 논문을 싣습니다. 새로운 바둑 인공지능 인 ‘알파고 제로’를 개발했는데 이전 버전들과 달리 인간 대국의 기보 데이타 없이 바둑 규칙만 제공받은 상태로 출발해서 단기간에 경이적 성취를 이뤄냈다는 게 논문의 내용입니다.
이 성취는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알파고 제로는 바둑을 독학하기 시작한 72시간 만에 이세돌을 이겼던 버전인 알파고 리와 대결하여 100전 100승을 기록합니다. 이후 40일에 걸쳐 2,900만판을 둔 뒤에는 커제 9단을 3 대 0으로 꺾은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국에서 100전 89승 11패를 기록하죠. 40일 뒤에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정석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알파고 개발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교수는 알파고 제로가 기존 버전들보다 강한 이유에 대해 “인간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이 입력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 개발의 꿈을 향한 핵심적 단계”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뛰어난 알고리즘 개발만으로 기존의 데이터가 전혀없는 영역에서도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7년 가을 딥마인드는 알파고 제로에서 바둑을 의미하는 ‘고’를 뺀 알파 제로를 선보이기에 이릅니다. '알파고 제로'가 바둑에 한정된 것과 달리 '알파 제로'는 여러 게임에 적용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범용화했죠. 이렇게 탄생한 '알파 제로'에 일본 장기인 ‘쇼기’의 룰을 입력하고 강화 학습한 결과,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현존하는 가장 강한 쇼기 AI인 '엘모'를 격파해 버립니다. 체스 역시 강화 학습 4시간 만에 가장 강한 체스 AI인 '스톡피쉬'를 이겨 버리죠. 바둑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려서 이세돌 9단과 대결 버전인 '알파고 리'를 이기는 데는 8시간이 소요됐고 자신의 모태이자 바둑 AI 가운데 가장 강력한 '알파고 제로'를 추격하는 데는 24시간이 걸렸습니다. 바둑용으로 출발한 AI가 자유를 얻으면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여러 게임의 최고봉을 격파한 것이죠.
그리고 '알파 제로'는 다른 AI와 비교해 마치 '사람처럼' 사고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스톡피쉬'나 '엘모'가 여러 가능성을 광범위하게 비효율적으로 탐색하는 것과 달리, '알파 제로'는 심층 신경망을 통해 선택적으로 소수의 가능성을 집중 탐구합니다. 초당 탐색 수를 비교하면 체스에서 '스톡피쉬'가 초당 7000만개의 수를 탐구할 때 '알파 제로'는 고작 8만개의 수를 연구했을 뿐이죠. 쇼기에서 '엘모'가 초당 3500만개의 수를 탐구할 때, '알파 제로'는 초당 4만개의 수를 탐구했고요. 이 말은 알파 제로의 경우 하나의 수에 대해 생각 하는 시간이 길수록 결과물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뜻입니다.마치 사람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알파 제로'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의 범용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은 이제 알파 제로를 위시한 뛰어난 인공지능이 세상의 온갖 일에서 답을 찾아내기 시작할 거라는 의미죠. 사회 속의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 경제, 행정, 식량, 범죄, 교통 등은 물론 정치나 학문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영역들에서 우리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정작 우리 인간은 알파 제로와 같은 인공지능이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 무슨 이유로 특정한 답을 제시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아주 복잡하고 많은 데이터들을 통계 낸 결과이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문제해결이 가능한 결론만을 제시할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때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인공지능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엉뚱해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정된 논리와 상식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그간 검증되어 온 컴퓨터의 문제 해결능력을 믿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앞에 가로놓이게 될 것입니다.
1956년 존 매커시와 마빈 민스키가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창시한 이래,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계의 지능이 특정한 측면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동작하는 인공지능은 이를 만들고 훈련시키고 나아가 그것의 결정에 의존하게 될 인간의 존재 가치를 현격하게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복잡한 문제의 결정을 인공지능에 일임하게 된다면 그것은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게 되는 상황일까요? 혹은 합리적인 솔루션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런 문제는 고려할 필요 없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들은 과학기술이 기계를 극한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시점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가치가 무엇인지의 인문학적 성찰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줍니다. 기계는 결국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