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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은 모든 기업인들의 꿈과 같은 일이죠. 시장에서의 경쟁은 심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이 생존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졌습니다.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기업도 저출산 고령화 등의 이유로 시장이 변화하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요, 오늘은 어려운 기업 환경 속에서도 올해로 220년을 맞이한 장수기업, 미즈칸을 포스팅합니다.

 

미즈칸은 에도 시대 후기인 1804년에 주조사업으로 창업했습니다. 당시 초밥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것을 본 창업자 나카노 마타자에 몬은 술지게미를 활용하여 식초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로 식초는 미즈칸의 주력 제품이 되었지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즈칸은 식초 외에도 많은 히트 상품들을 출시했습니다. 1964년에는 일본의 나베요리에 빠질 수 없는 조미료인 ‘아지폰(味ぽん)’을 출시해, 일본 전역에 ‘미즈타키(닭고기 요리)’를 유행시켰고요. 2008년에는 포장을 뜯고 10초 만에 먹을 준비를 마칠 수 있는 ‘아라 벤리(어머나 편리)’ 낫토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출시 6개월 만에 일본 전체 인구가 1.5개씩 먹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도 미즈칸은 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문제가 일본 시장만을 겨냥하던 미즈칸에게는 큰 위기였던 겁니다. 미즈칸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 경로를 찾았는데요, 그렇게 2010년대에 시작된 유럽과 북미 시장 진출은 성공적이었고, 미즈칸은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200년 넘게 일본 내에서만 잘 나가던 미즈칸은 어떻게 해외 진출에 성공했을까요?

 

먼저, 미즈칸은 200년 넘게 해왔던 자사의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은 자사의 유명 제품을 수출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유럽 식품 시장은 탑 브랜드가 아니면 경쟁이 어려운 과점화된 시장이었기 때문에 미즈칸은 영국의 식초 브랜드 Sarson’s를 인수하면서 유럽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북미 시장을 개척할 때에도 미즈칸은 또다시 식초를 버리고 파스타 소스 탑 브랜드인 Ragu와 Bertolli를 인수했는데요. 유럽시장과 마찬가지로 과점화된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미즈칸의 행보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더 이상 식초 회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CEO의 철학이 담긴 과감한 의사결정이었습니다.

 

미즈칸의 두 번째 성공 요인은 해외 브랜드 인수를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기업 M&A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M&A 성공률을 보통 30% 내외로 보고 있습니다. 또 무리한 인수로 인해 오히려 기업 경영이 위험에 빠지거나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즈칸은 장기적인 안목과 포석으로 승자의 저주를 피하고 북미와 유럽의 브랜드들을 성공으로 인수했습니다. 미국 파스타 소스 브랜드 인수 당시, 인수에만 2,150억 엔이 소요되었는데요, 당시 미즈칸 일본 매출의 두 배가 넘는 큰 금액이었지만, 기업 인수 자금을 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즈칸은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2001년부터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에 200억 엔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는데요. 이 펀드가 2014년에는 1,600억 엔의 규모로 성장했고, 미국 파스타 소스 브랜드 인수에 필요한 자금원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즈칸은 인수 당시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고, M&A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미즈칸은 자사가 추구하는 ‘세노비(せのび)’ 유전자를 해외 브랜드에 성공적으로 이식했습니다. 세노비는 우리말로 ‘손에 잡히는 수준의 개선 목표’를 뜻하는데요.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를 꾸준히 달성해서 큰 개선을 이루는 미즈칸의 전략을 말합니다. 미즈칸이 해외 브랜드에 세노비를 이식하게 된 계기는 미국 데밍 공장에서 발생했던 불량품 출하 미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원재료 입고 시에 불량품으로 판단되어 따로 보관되던 칠리 페퍼가 생산 과정에서 소스의 원료로 사용된 거죠. 다행히 확인 과정에서 실수를 발견했고, 제품의 출하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미즈칸은 미국의 생산 공정에 불투명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공정이 불투명하면 개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산 공정을 상세하게 재정의하고 가시화했습니다. 가시화를 통해 단계별로 검증이 가능해진 후에는 생산 공정 단계별로 작지만 꾸준한 개선을 위해 노력을 시작했죠. 미국에서의 값진 경험은 영국에도 전파되었고, 미즈칸의 세노비 유전자는 북미와 유럽 사업을 투명화하며 끊임없는 개선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미즈칸은 200년의 성공에도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미즈칸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소비시장의 변화를 감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소비시장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한국 기업들도 미즈칸을 벤치마킹하여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