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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국의 모 기업이 미국 위싱턴에 “한미교류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목적은 미국 의원과 보좌관들의 한국 방문을 주선해서, 한국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단체가, 5년 만에, 부도덕한 외국 단체로 낙인찍히면서, 사실상 공중분해되었습니다. 한미교류협회는 미국의 외국 에이전트 등록법(FARA)에 따라 신고도 했었는데 말이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이 단체가, 미 법무부에는 외국 에이전트라고 등록한 반면 세금을 환급받기 위한 국세청 자료에는 로비와 관계없는 교육단체라고 보고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세금 회피를 위해 이중등록을 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요. 교육단체라면 합법적인 교류사업이, 외국 에이전트의 경우는 불법이 된다는 점이었죠. <워싱턴포스트>는 이 일을, ‘비영리로 분장한 외국 로비’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고, 한미교류협회를 세운 기업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제도를 잘 몰라서 생겼던 사건이었죠.
이처럼 결정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로비, 풀뿌리 로비, 정치자금 기부 등을 할 때는 국가별로 다른 제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외국에서 로비를 할 경우 로비 전문회사가 전부 대행해줄 텐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덮어놓고 그들에게 맡겼다가는 한미교류협회의 경우와 같은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국가별로, 케이스별로 적용 제도가 다르겠습니다만, 오늘은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사항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먼저 직업적인 전문 로비스트의 허용 여부부터 나라마다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전문 로비스트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소속 직원들의 로비활동만 용인되죠. 그래서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직원으로 취업을 시키곤 합니다. 반면, 미국, 캐나다, EU 등에서는 직업적인 전문 로비스트가 허용되어서 로비회사나 전문 로비스트에게 로비를 의뢰할 수 있습니다.
주미 한국대사관도 한미 FTA 비준안의 미 의회 상정과 같은 현안이 있을 때면, 현지 로비스트를 고용했는데요. 현재, 수많은 로비스트가 모여 있는, 백악관 북쪽의 K Street는 미국 로비의 상징이 되고 있죠. 그리고 EU의 주요 집행기관들이 모여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코르덴 베르크 거리에도 1만 명이 넘는 로비스트들이 다국적 기업과 이익단체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로비활동이 허용된 국가에서도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로비활동 공개인데요. 한국에서는 로비활동에 대한 공개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활동 내역을 신고해야 하고요. 미국에서는 로비 활동은 물론 로비와 관련된 재무적 내용까지 신고해야 합니다. 규제가 상당히 강력하죠. 게다가 한미교류협회의 경우에서 보듯이, 활동 내용 신고는 물론이고, 관련법과 까다로운 윤리규정들을 준수해야 하는데요. 이런 규정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이니 더욱 주의해야겠습니다. 2007년에 미 의회는 “청렴 리더십 및 열린 정부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는데요. 이 법은 1995년의 로비 공개법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규정들을 잘 인식해서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자금법 역시 국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공히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만 허용하고,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는 금지합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 있는 자금으로도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기업이나 노동조합에서 분리된 기구, 이른바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을 만들면 기부할 수 있습니다. 가령, 구글이라는 기업은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지만, 구글 직원들이 구글 PAC을 만들어서 정치자금을 모으고 기부하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죠. 게다가 미국에서는 기부금액에 대한 제한이 사실상 없는 셈인데요. 미국 대법원이 정치자금 기부를 ‘표현의 자유’로 해석해서 규제를 거의 풀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개인이, 2천만 원까지만 기부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한 명에게 기부 가능한 금액도 500만 원으로 제한되어 있죠. 모금의 경우도, 국회의원의 경우, 선거가 없는 해를 기준으로 1억 5천만 원까지만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대가성 없는 순수한 후원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편법을 써서 정치 후원금을 주었다가 처벌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죠.
이처럼 국가마다 다른 제도를 이해하는 것은 위법행위를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허용되는 제도는 제대로 활용해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결정권자를 움직이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자금 제공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죠. 제도와 환경에 맞는 지혜로운 PA활동으로 결정권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하는 경영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