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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 중년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집사람이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뒷골이 당겨서 살 수가 없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는 정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남은 게 내 형제자매들 뿐인데 제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특히 큰 누님이 우리 형제를 돌보느라 고생한 건 말도 못 합니다. 요즘 형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좀 찾아가 뵙고 그랬으면 하는데 집사람이 저러니 형수님 찾아뵙는 것도 제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러자 아내 분은 아직도 남편은 시댁 식구들만 제일 먼저 챙긴다며 호소했습니다. “애초에 저 사람한테 저는 붙박이 장롱일 뿐입니다. 있으면 당연한 거고 없으면 일단 불편한 거고 그런 겁니다. 저 사람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한 평생을 어머니의 아들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우리 가족들에게도 마음을 내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남편에게 우리 가족은 늘 뒷전입니다. 자기 형제들만 챙기지 정작 자기 식구는 관심도 없습니다”
남편은 오히려 집사람이 형제들 사이에서 분란만 조장한다며 어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집사람이 이런 거를 아니까 모든 형제자매 사이가 다 불편한 겁니다. 가만히 보면 아내 한 명만 참으면 모두가 다 편할 텐데 정말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떻게 아내가 돼서 내 가족을 싫어할 수가 있는 건지 참 애석할 뿐입니다. 저는 집사람하고 자식들한테 이만하면 할 만큼 다 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뭐 부족할 게 없어요.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나 자식 놈들이나 정말 제 타는 속은 아무도 모릅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남편은 혈육 중심 사고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혈육중심혈육 중심 사고가 맞다고 생각을 하거나 혈육 중심 사고를 갖고 있으면서 ‘아니다, 난 부부 중심이다’를 ‘주장’ 하는 분입니다. 내가 가족을 이미 보호하고 있다는 주관적 생각에 현재 가족은 괜찮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형제자매를 잘 챙겨야 서로가 돈독하게 지낼 수 있다'는 혼자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당신 한 명의 희생으로 인해 전체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이죠.
아내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자기가 오죽하면 이혼을 운운하겠냐며 남편이 야속하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남편이 큰 조카한테 100만 원 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당장 유학 중인 아들한테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공부하게 하고 용돈 좀 더 보내자고 하는 제 말에는 인색하게 딱 자르더니, 큰 조카한테는 용돈이라고 나 모르게 100만 원을 준 겁니다. 다 말을 안 하고 저 모르게 해서 그렇지 본가 식구들한테 남편은 물주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만 아주 인색해요.” 남편은 형제들 중에 본인이 제일 먹고 살만 해서 좀 더 마음을 쓰는 것뿐인데 집사람은 그 꼴조차 못 본다며 더 속이 뒤집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35년 넘게 참고 살면서 그래도 남편이 언젠가는 우리 식구도 챙기겠지, 시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각별함을 익히 알기에 참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어요. 오히려 전보다 더 자기 형제, 친척, 조카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렇게 퍼 줘봤자, 시댁에서 저 사람은 물주일 뿐 인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는 저도 늙었고 우리 가족한테 인색한 남편을 부여잡고 있을 여력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남편 특징이 아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해야 드디어 아내를 들여다봅니다. 전반적인 중년 부부가 갖고 있는 특징입니다. 그전까지는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는 남편의 관점에서만 생각을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이혼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기까지의 심적인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편 분에게 아내가 이혼이라는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내면의 얘기를 이제부터 부부가 시작하는 계기로 삼길 권유했습니다. 정말 본질은 아내 분은 이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부부 중심 가정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편 분도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부인을 뒷전으로 둘 수 있을 만큼 부인을 믿는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잘 한 거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을 안했기 때문에 아내도 몰랐던 것이죠.
부부관계는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가장 진지하고 진솔한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엉킨 실타래가 어느 날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릴 삼켜버리기 전에’라는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부부 사이에 생긴 스크레치가 언젠가는 시간이 약이 되어 아물길 기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단 5분이라도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엉킨 마음을 그때 바로 하나씩 풀어가는 노력이 부부 사이에는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