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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990년대 닷컴시대를 연 선구자 야후가 22년 만에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주력 사업부문인 인터넷 사업과 각종 부동산이 미국 최대 이동통신회사 버라이즌에 전성기 시가총액의 4%에 불과한 헐값, 48억 달러에 매각된 것인데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446억 달러 인수 제안까지 거절하며 부활을 꿈꿨던 야후는 이제 버라이즌의 작은 자회사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2012년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는 만삭의 몸으로 위기에 빠진 야후를 구할 특급 구원투수 역할을 흔쾌히 수락하며 화제를 낳았습니다. 당시 37세 마리사 메이어는 슈퍼모델급 화려한 외모, 스탠퍼드의 학력뿐 아니라, 구글 영광의 시작이었던 검색창을 설계한 '천재 엔지니어'이자, 최연소 구글 부사장, 엄친딸, 독종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던 실리콘 밸리 대표 브레인이었습니다. 메이어 임명으로 꺼져 가던 야후 회생의 기대감이 높아졌고, 주가는 한때 2배가량 상승하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메이어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야후의 간판을 내린 먹튀 경영자로 전략했습니다. 메이어 통치 4년간 야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구글의 성공 DNA가 이식될 수는 없었던 걸까요?
메이어의 턴어라운드 전략은 당연히 모바일 퍼스트였습니다. 메이어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를 뉴스 읽기, 날씨 확인, 이메일 확인, 사진 공유 이렇게 네 가지로 정하고, 여기서 최고의 앱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놓죠. 이후 요약 앱 섬리(2013),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 텀블러(2013), 모바일 앱 분석업체 플러리(2014)를 잇따라 인수했는데요.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11억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인수한 텀블러는 웹 기반에서 모바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동일한 시기 페이스북에서 인수한 인스타그램이 35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은 것과 대조적인 결과였죠. 물론 야후 내 모바일 역량이 부족했고, 이미 모바일로 전환하기에는 늦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략방향에 맞게 핵심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메이어는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동영상 포털 사이트 '스크린'을 개설하고, 동영상 광고회사 '브라이트'를 6억 4천만 달러에 인수 해미 디어 콘텐츠로의 전환도 꾀했습니다. NBC 시트콤 '커뮤니티 시즌 6' 제작에도 뛰어들었죠. 하지만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의해 장악된 콘텐츠 시장을 뚫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막대한 손실을 보고 말았죠. 이 같은 야후의 행보를 두고 IT 블로그 테크크런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야후는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것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영역을 수직적으로 집중 개발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모바일로의 전환이라는 명제 하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가능성을 가진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뭐 하나 확실한 위치에 올려놓지 못한 야후의 수평 확장 전략을 두고 '땅콩버터를 식빵에 옅게 바르는 전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습니다.
통상, 턴어라운드 전략은 크게 긴축과 회복으로 나뉩니다. 자산 매각, 인력 감축, 비용 효율화 등 구조조정으로 대표되는 긴축 단계는 피할 수 없는 단계인데요. 다만, 위기 진화 차원에서 '단기에, 한칼에' 완료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입니다. 또한, 성장과 신제품 및 신시장 강화 등 회복단계를 동시에 진행해, 종업원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변화의 활력을 가미해야 한다는 것도 본원적인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죠. 하지만 야후는 바로 이 부분에서도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2014년 8월 메이어는 본격적으로 직원들을 해고하기 시작합니다. 5분기 연속 이익 감소라는 부진한 실적을 이유로, 수개월 동안 매주 조금씩, 조금씩 직원들을 해고했죠. 다음 주에는 누가 무슨 이유로 해고될지 모르게 되자 조직은 삐걱되기 시작했고, 메이어는 2015년 3월 "더 이상 피를 묻히지 않겠다."라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1,100명을 해고 조치합니다. 감원 전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회생의 기대감보다는 살얼음판을 걷는 공포감이 야후를 지배하게 되었죠.
실적 하락에 따른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여파는 단순한 인력 유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직 내 구심점이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 실적 위주의 인력 운영은 핵심 인력마저 퇴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메이어는 자신이 영입한 엔리케 데 카스트로 최고 운영책임자를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입 1년 3개월 만에 내보냅니다. 2015년에는 유럽 책임자 돈 에어리, 마케팅/미디어 책임자 캐시 새빗, 개발 책임자 재키 리시스 등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죠. 야후의 핵심인 엔지니어링과 제품 개발, 마케팅, 광고 등 주력 부문에서 퇴사한 고위 임원만 수십 명에 달했고, 일부 임원들만을 붙들기 위해 거액의 보너스를 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직 분위기는 완전히 와해됩니다. 전략 집중 부재에 따른 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질책성 구조조정, 그리고 핵심 인력의 퇴사라는 악순환은 4년간 야후를 IT 전장에서 내몰게 되죠.
2000년대 중반까지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했던 야후, IT 업계에서 야후는 조금 특별한 존재였기에, 모바일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며 내리막길을 걷다 끝내 쓸쓸히 퇴장하는 야후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더욱 큰데요. 그래서일까요? '명확한 전략 방향 하에서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에 좀 더 집중해 구심점을 확보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