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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 가전업계를 주름잡았던 일본 기업 하면, 파나소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후 파나소닉은 업계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쇠락했는데요, 그랬던 파나소닉이 최근 '5.0 전략'을 추진하며 부활의 불씨를 댕기고 있습니다. 3.0 시대, 즉 산업사회에서는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던 파나소닉이 4.0 시대인 정보화 사회에서 적응에 실패하자, 4.0 시대를 건너뛰고 5.0 시대를 주도하겠다며 내세운 전략인데요, 오늘은 이런 파나소닉의 5.0 전략을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5.0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파나소닉이 자체 정의한 5.0 시대란,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끼리 정보교환을 하게 되어 사용 언어의 유·불리함이 없어지고, 인터넷 중심이던 4.0 시대와 달리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파나소닉은 하드웨어 제조에 강점을 가진 자신들이, 아직 아무도 점령하지 않은 5.0 시대로 바로 직행하겠다며 5.0 전략을 세운 것이죠. 이를 위해 파나소닉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베타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파나소닉은 2002년 로봇청소기 시제품을 제작했지만 수직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조직문화 탓에 실제 제품은 2015년에나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파나소닉과 비슷한 시기 로봇청소기를 개발하던 미국이 이미 시장을 점령한 뒤였죠. 이런 관료주의 조직문화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진단한 경영진은 2017년 바바 와타루를 영입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상품개발 프로세스를 애자일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이미 조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관료주의를 한 번에 그리고 단시간에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바로 '파나소닉 베타'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애플 신사옥 건너편에 자회사인 파나소닉 베타를 지어 파나소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견인하도록 한 것이죠. 파나소닉 베타에는 디자이너·엔지니어·제품 매니저·데이터 과학자 등 약 20명의 최소 인력만 상주하고 본사에서 40~60명의 젊은 인력을 3개월씩 파견받아 애자일 프로세스로 제품을 개발합니다. 이를 온전히 경험한 젊은 직원들은 본사로 돌아가 새로운 업무처리 방식을 전파하죠. 파나소닉 베타는 활발한 피드백, 빠른 의사결정으로 출범 후 1년간 5,000여 개의 아이디어를 확보하는 등 바바 와타루의 혁신은 현재 빠르게 정착 중입니다.

 

이러한 혁신을 토대로 파나소닉 베타가 내놓은 5.0 시대 파나소닉의 첫 모델은 'Home X' 프로젝트입니다. 이는 가전, 조명 및 에너지, 자동차 배터리 및 이미지센서 등을 제조하던 제조회사에서 가전과 라이프 설루션 제품을 하나로 묶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로 변모하겠다는 전략인데요. 이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존 제품에 대한 통념을 바꿔 가전기기를 단순히 제조·판매하면 끝나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주기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로 정의한 것이죠. 스마트폰은 수시로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 사용자 편의성을 도모하고, 전기자동차 선도사인 테슬라도 업데이트를 통해 자동차 성능을 개선하고 설령 그 개선된 성능이 인지되지 않더라도 고객이 자동차 성능이 개선되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처럼, 파나소닉도 Home X 플랫폼을 통해 가전이 소비자의 요구조건을 반영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두 번째 전략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입니다. 조명을 제어하던 스위치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홈 플랫폼을 구축하고, 가전기기들을 이 플랫폼 속에 넣어 집안의 모든 기기와 장치를 통제하고 업그레이드해주면서 고객에게 더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것입니다. 파나소닉은 원래 조명회사로 시작한 만큼 지금도 일본 주택의 조명 스위치 분야에서는 80%의 점유율을 보일 정도로 홈 조명분야 강자인데요, 이런 장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파나소닉의 디스플레이가 집안의 IoT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보일러, 에어컨, 창문, 커튼 등 파나소닉이 제조하지 않는 다른 회사의 기기와 장치까지도 플랫폼 안으로 들어와야 가능한데요, 그래서 파나소닉은 주택회사, 서비스 회사는 물론 경쟁사까지 가리지 않고 가정에서 쓰이는 제품과 서비스 관련 회사라면 누구 와든 사업 파트너가 되겠다는 협업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Home X 크로스 밸류 스튜디오 조직도'를 만들어 여러 스타트업들과도 협업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재생에너지, 출장요리 서비스, 수산물 회사 등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레시피 회사 '쿡 패드'와의 협업으로 부엌에서 고객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요리 추천까지 해줄 수 있는 스마트 키친 서비스를 개발 중이고요, 아로마 회사 '코드 미'와의 협업을 통해서는 침실 내 모든 제품을 연결한 후 아로마 송풍을 제공해 고객의 수면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합작법인을 통한 사업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도요타와 합작법인을 세워 스마트 단지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 그 예입니다. 주택 안은 파나소닉의 플랫폼이 통제하고 주택 밖 단지는 도요타의 자율주행차가 다니며 파나소닉의 플랫폼이 차고를 여닫고 도요타 자동차의 시동을 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야심 찬 계획에는 제품을 업데이트하고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들을 통해 파나소닉 제품을 고객에 더 최적화시켜, 플랫폼에 묶이게 되는 제품들도 파나소닉 제품으로 수렴하게 만들겠다는 Home X의 마지막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죠.

 

이처럼 파나소닉은 한동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화 하고, 제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판매하고, 경쟁사부터 다른 영역에 있는 회사들까지 과감하게 협업해 자신들의 플랫폼에 진입시키고자 하는 것이죠. 이러한 혁신이 파나소닉을 다시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킬지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